광주 남 가볼만한곳 베스트10 | 여행 명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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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광주 남의 다양한 매력과 흥미로운 볼거리를 담은 베스트 10 관광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목록은 한국관광공사의 인기 순위를 기반으로 선정되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 풍부한 역사, 그리고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명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족,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에 이 목록을 참고하시어,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사직공원(광주)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직공원(광주) 소개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입니다.
사직단이란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여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입니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1994년 4월 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습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또는 화초들의 조경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합니다.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사직공원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타워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사직공원(광주)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www.namgu.gwangju.kr
운영 시간 전망타워 09:00~22:00 (입장마감 21:50)
주차시설 불가
쉬는 날 연중무휴
포충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포충사 소개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 고인후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 안영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입니다.
광주와 전남 지역 서원과 사우 중에서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1868년, 고종 5) 때 훼철되지 않은 곳입니다.
호남 지역 유학자들이 고경명 등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였습니다.
1603년(선조 34) 박지효 등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와 고경명의 후손들이 사액을 청하여 조정에서 포충(褒忠)이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후 수차례 중수가 되었습니다.
포충사는 신사우 구역과 구사우 구역로 나누어진다.
신사우 구역에는 사당인 포충사와 내삼문인 성인문이 있으며, 내삼문 앞에는 유물전시관인 정기관과 외삼문인 충효문이 있습니다.
구사우 구역은 신사우 구역의 서쪽에 있으며, 사당과 동재, 서재 및 내삼문, 외삼문이 있고,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포충사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tour.gwangju.go.kr
운영 시간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제향행사일
최승효가옥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최승효가옥 소개
최승효가옥은 양림산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입니다.
1920년대 사동 최부자인 최명구의 큰아들 최상현이 건축하였습니다.
건물은 동향으로 지었으며, 주요 건축 목재는 압록강을 통해 운반된 금강송이며 마루는 옷칠을 하였습니다.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골기와는 강진 옹기로 주황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가옥은 훗날 최상현의 사업 실패로 매각되었는데 최승효가 매입하였습니다.
1993년 최승효가 죽은 이후에는 아들인 최인준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습니다.
최인준은 현대미술가이자 비디오아트 백남준의 제자입니다.
다양한 수목이 울창하고 석간수와 집의 후원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조망이 특별하다.
안채인 자이당은 정면 여덟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자형 평면의 팔작집이면서도 우측의 경사진 부지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1퇴 공간의 반지하층을 구성하여 율동감을 주었습니다.
좌측으로도 1퇴를 개방공간으로 주어 비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형성하여 단조롭지 않게 하였습니다.
서향인 뒤쪽은 너비 60m의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일단 차단시키고 있으며, 미닫이 창문 때문에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벽면 윗부분에 띠판창을 두었습니다.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합니다.
다락 외부벽에는 완공을 두어 다락안의 채광을 돕고 있습니다.
기단은 우측의 반 지하 부분을 제외하고는 1cm 정도 높인 뒤 2단 원형 주초석을 써서 모양을 살렸다.
최승효가옥은 행사가 있을 때에만 개방되어 탐방이 쉽지 않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최승효가옥 기본 정보
이장우가옥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장우가옥 소개
이장우가옥은 500여평의 대지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된 근대 한옥입니다.
상류층 팔작 기와지붕 가옥으로 광주 지역의 부호였던 정낙교의 아들 정병호가 1899년 안채와 1935년 문간채를 건축하였고, 동신대학교와 동신중·고등학교 등을 설립한 동강 이장우 박사가 1959년 매입 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까지 완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해당 건축물의 안채 상량문에 [광무 삼년 을해 이월 십일 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기록된 점을 보아 근대화 시기인 1899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채는 120.12㎡(약 36평) 규모이며, 툇마루, 작은방, 대청, 큰방, 부엌, ㄱ자형으로 꺾인 작은방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입니다.
남부지역 가옥들의 평면 형태가 ㅡ자형인 것과 달리 ㄱ자형인 점과, 부녀자의 활동을 편리하게 하고 가족의 공간을 확보한 근대 한옥의 특징을 갖추었습니다는 점을 인정받아, 안채가 1989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곳간채는 한때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가 2009년 복원되었습니다.
마당에는 일본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2009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의 특별 전시 장소로 활용하면서 한국식 정원으로 재조성하였습니다.
이장우가옥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초기 전통 상류 가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장우가옥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tour.gwangju.go.kr
운영 시간 09:00~18:00
주차시설 있음(양림마을주차장, 유료 - 2시간 이내 무료)
쉬는 날 일요일 / 공휴일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 소개
광주는 일제강점기 시절 광주학생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독립운동이 펼쳐진 고장입니다.
이러한 고장에서 3·1 만세운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광주지역의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당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입니다.
넓이 4㎡ 길이 7m로 3·1 운동 때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형상입니다.
1995년 5월 10일에 건립한 이 기념비는 광주 수피아여고 후문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면에는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은 1919년 3월 10일 광주 3·1 만세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옥고를 치른 수피아여고 학생들의 이름을 새겨 길이 기념하고자 했습니다.
기념비에는 박순애, 이태옥, 김양순, 윤혈녀, 김덕순, 조옥희, 이금봉, 하영자, 강화선, 이라혈, 최수향, 김만순, 홍순해 등 23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옆면은 추모시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역사의 별이 되어라]
천추에 이름 석자 누구나 남기는가, 기미년 3·1 운동 선두에 서서 구국의 일념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태극기 앞에 두고서 독립만세를 외쳤네. 일제의 총칼 앞에 나라가 침탈 당하자 자유 없는 속박에서 사느니보다 사슬을 끊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네. 모진 고문을 당하여도 이겨낸 고결한 애국 얼이 역사의 별이 되어 무궁토록 빛나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 기본 정보
선교기념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선교기념비 소개
이곳의 선교기념비는 광주광역시에서 최초로 진행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의 예배를 기념하여 세워진 비석입니다.
광주광역시립사직도서관 인근의 도로변이나 비가 세워진 장소에 개신교의 예배 장소로 쓰인 건물이 있었습니다고 합니다.
비에는 [선교기념비] 다섯 글자만 새겨져 있으나, 받침돌에 박힌 별도의 돌에 [이곳은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는 처음 예배드린 곳으로 그 거룩한 뜻을 길이 기리어 여기 돌비 하나 세우니라. 1982년 12월 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 삼가 세움]이라는 글귀가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선교사 배유지[유진 벨 Eugene Bell]가 진행한 최초의 예배는 훗날 제중원 선교사들의 임시사택 자리에서 진행되었습니다고 하며, 1982년 당시에는 선교기념비가 세워진 장소가 그 위치인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이후 관련 문헌 등을 통해 지금의 광주기독병원 내에서 제중원 터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어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새로 건립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선교기념비 기본 정보
광주공원 선정비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광주공원 선정비군 소개
광주공원 선정비군은 광주 여러곳에 있는 조선시대 선정비나 사적비를 광주공원에 모아 놓은 장소입니다.
주로 전라도 광주의 수령이었던 광주목사, 군수의 비가 있으며, 관찰사, 도지사들의 비도 있습니다.
그 외 유학자 안규용, 어사 조헌과 여규익, 소수의 찰방 선정비가 있습니다.
광주공원 선정비군의 비석은 본래 전라남도 광주 지역 곳곳에 흩어져 훼손된 비석을 1957년 광주공원 입구에 조성하였습니다가, 1965년 지금의 위치인 광주공원으로 옮겨져 총 27기의 비석이 모여 있었으나 광주목사 신석유의 선정비는 2011년 복룡마을로 옮겨져 지금은 26기가 남아 있습니다.
26기의 비석 중 초대, 4대 전라남도 관찰사 및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 윤웅렬(1840~1911), 5대 전라도 관찰사 겸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 이근호(1861~1923), 전라남도 관찰부 광주군수 홍난유(1856~1913)는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입니다.
2019년 8월 8일 광주광역시에서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이하여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 홍난유]의 죄상을 밝힌 단죄문을 세우고 비석을 뽑아 눕혀 놓았습니다.
광주공원 선정비군 기본 정보
정엄정려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정엄정려비 소개
조선 후기의 효자 정엄의 석조로 된 정려비와 정려각입니다.
정엄정려비는 2단의 받침을 둔 좌대 위에 비몸을 세웠다.
비머리는 종모양으로 변형 운문을 조식하였고, 비몸과 같은 돌입니다.
사방에 석조 기둥으로 정려각을 세웠다.
정려각 내에는 비와 함께 충견과 관련한 설화가 전하고 정려각 곁에 석구상이 있습니다.
효자 정엄은 155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모친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고 병환 중이실 때에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모친을 돌보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장례 절차를 성대히 하였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611년 국가에서 정려를 명하였습니다.
이 후 정려각이 퇴락되어 1975년에 석조로 재건하였습니다.
비신에는 『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증가선대부사헌부대사헌겸) 弘文館提學豫文館堤學同知(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동지) 經筵春秋館義禁府事五圍都總管(경연춘투관의금부사오위도총관) 世子左副賓行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세자좌부변행통정대부승정원동부승지겸) 經筵參贊官春秋條選官知製(경연춘추관의춘추소선관지제) 敎楊村鄭先生旌閭碑(고양촌정선생정려비)』 라고 쓰여 있습니다.
정려각 앞면에 효자광주정공엄지려(孝子光州鄭公淹之閭)라 새겼다.
* 정려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풍습으로 정문·정려를 세운 것은 신라 때부터이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와서는 전국적으로 상당수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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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엄정려비 기본 정보
관덕정의 각궁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관덕정의 각궁 소개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건강하게 해주는, 관덕정의 각궁 궁술은 무사뿐만이 아니라 선비들도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요건이었습니다.
이러한 활이 요즘에는 생존이나 방비기능은 완전히 상실했고, 스포츠와 취미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에도 스포츠와 취미로서 활의 명맥을 이어주는 곳이 있는데, 사직공원에 있는 활터 관덕정이 그것입니다.
관덕정의 사범이자 전남에서는 유일하게 활을 만들고 있는 권태은 씨는 호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3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데, 광주에 자리를 잡은 것은 23년 전입니다.
경상도에서 활을 만들면 팔러나가는 곳이 대부분 전라도이므로 아예 광주로 옮겨와 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는 권씨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활의 재료와 쓰임새에 따라 무척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각궁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습니다.
* 전통이 실려있는 각궁이란? *
후궁·장궁(長弓)이라고도 합니다.
각궁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습니다.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쟁이나 사냥에 쓰인 것은 궁간상(弓幹桑)·뿔·힘줄·아교·실·칠 등 6가지로 만들고, 운동이나 오락으로 쓰인 것은 궁간상·참나무·대·벚나무·뿔·힘줄·아교 등 7가지로 만들었습니다.
강(强)·중(中)·연(軟)의 구별이 있어서, 남녀 누구나 자신의 힘에 맞는 것을 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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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의 각궁 기본 정보
양림동 선교사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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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선교사 묘지 소개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호남신학대학교 구내 언덕에는 선교사 묘역이 있습니다.
이국적 느낌을 주는 다양한 형태의 묘비와 각진 봉분들이 자리 잡고 있는 묘역에는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동하다 1909년부터 1967년 사이에 사망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가족들이 묻혀 있습니다.
양림동 선교사 묘지는 광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새 물결과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23인의 선교사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은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배유지 목사와 클레멘트 오웬의 주된 선교지였다.
배유지 목사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고, 글레멘트 오웬은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였습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배유지 목사를 기념하기 위한 선교기념비와 클레멘트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오웬 기념각 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복음과 의료, 교육, 아동과 여성을 직능별로 맡아서 지역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선교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광주 지역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서구 근대 문화를 소개하고, 지역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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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선교사 묘지 기본 정보
지금까지 광주 남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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